세월호 재판 법정 '통곡·오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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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작성일15-01-31 20:23 조회1,470회 댓글0건본문
[류재복 대기자]
"원래는 다음 재판 절차를 안내하고 재판을 마치겠다는 말을 하는데 영상을 미리 봤더니 너무 슬펐습니다. 보고 나서 재판을 마친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광주지법 형사 11부 임정엽 부장판사는 21일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28회 공판을 이렇게 마쳤다. 재판장의 맺음말 뒤에는 숨진 단원고 2학년 8반 학생의 부모가 만든 영상이 법정에서 흘러나왔다.
"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임형주의 헌정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에 맞춰 자막과 정부 합동분향소의 영정 사진, 2학년 교무실과 교실, 학생들 단체사진, 수련회·체육 시간의 일상 모습, 가족사진이 흘러나온 뒤 "별인 된 아이들이 묻습니다. 엄마, 아빠 지금은 안전한가요"라는 자막이 나왔다. 재판이 끝나고 승무원들이 퇴정하고도 유가족들은 오열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야 이 XX들아"라고 울부짖는 유가족도 있었다.
재판부는 다음 주 결심 공판에 앞서 예고한 대로 이날 재판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었다. 단원고 학생의 부모, 실종된 교사의 아내, 끝까지 승객 구조활동을 벌인 화물차 기사 김동수씨 등 생존자, 생존 학생의 가족 등 16명이 증언했다.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세 편도 상영됐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재판이 중계된 후 한동안 발길이 뜸해졌던 유가족들이 방청석 100여석을 채웠다.
유가족들은 재판 내내 울분과 회한의 눈물을 보이며 간혹 법정 경위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안정을 되찾기도 했다. 단원고 교사인 실종된 남편을 아직 찾지 못한 민모씨가 첫 번째로 준비한 글을 읽어나가자 법정은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민씨는 "남편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바다와 친숙했고 대학 때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건장한 체육교사였다"며 "수학여행을 떠나는 그날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보낸 게 아직도 가슴 아프다"고 울먹였다.
그는 "팔순 가까운 시어머니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9살, 7살 두 아이는 '너네 아빠 죽었느냐'고 묻는 친구들 질문에 고민한다"며 "맞잡은 손의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데도 남편은 옆에 없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행복해 했던 나는 이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얼굴 마주치는 게 무서워 고개 들고 길을 걸을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언니를 잃은 15살 김모 양은 승무원들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김모양은 "4월 16일 이후 가족들은 언니와 함께 갔던 식당 앞에서 언니의 행동이 떠올라 말없이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며 "어머니는 선생님이었는데 학생들을 보면 눈물이 나 가르치지 못하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고 전했다.
김양은 "저는 잘 모르지만, 페이스북에서 선장, 선원들이 서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는 글을 봤다"며 "선장님들, 선원님들 그날엔 살려고 나왔다지만 이제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 아직도 차갑고 추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열 분을 위해서라도 부탁드려요"라고 말했다. 진술을 마치고 어머니와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김양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가족들도 흐느꼈다.
단원고 2학년 여학생은 생존학생 아버지의 손에 쥐여준 편지에서 "여름방학 때 여행가고, 대학 가서 술도 마시고, 결혼식에서 축가 불러주고, 자녀를 낳으면 가족 여행도 가고, 50대 아줌마 때 해외여행도 가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사고 후 바다로 뛰어들어 친구들을 구하고 싶었다. 선원들 행동과 반대로, '어서 탈출하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승무원들을 비난했다.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단원고 학생 아버지 박모씨는 "세월호처럼 침몰 중인 상태에서 승객 퇴선조치를 않은 행위 자체가 명백한 살인"이라며 "사법적 판단은 재판장이 하겠지만 미필적 고의, 부작위를 논할 가치도 없는 이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은 사치이니 법에서 정한 최고형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이모씨는 "선장,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움직이지 말라, 대기하라고 방송하고 도망을 갔다"며 "한두 명도, 10~20명도 아닌 300여 명을 살인한 학살자에게 사형을 선고해 억울한 희생자 가족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우리가 흘리는 눈물만 보지 말고 배에서 아이들이 흘린 눈물을 봐달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 선원들이 죗값을 치르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재판장은 학생들을 구하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왔던 일명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씨에게 진술 의사를 물었다. 김씨는 "들어가서 학생들을 끌고 나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나도 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수면제, 안정제도 듣지 않고 눈만 감으면 창가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승객들이 보인다"고 근황을 전했다.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는 그는 "숨진 학생들의 학부모는 병으로 고통을 헤아려 피고인들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장은 "죄책감 말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격려했으며 방청석의 유가족도 그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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