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앞에서 한시(漢詩)읊은 신임 검찰총장

대통령 앞에서 한시(漢詩)읊은 신임 검찰총장

청와대에서 25일 열린 문무일 검찰총장의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문 총장이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관련 공약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에 대해 "더 논의해 봐야 한다"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문 총장의 검찰 개혁 의지가 안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명장을 주면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문 총장은 "바르게 잘하겠다"고 한 뒤 "인사청문회 때 여야 의원들로부터 각기 다른 많은 주문을 받아서 한시(漢詩)가 생각났다"며 한시 한 수를 읊기 시작했다.

<'하늘이 하늘 노릇 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기다리는데 /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날씨를 바라네.' > 이는 대만 학자 난화이진(南懷瑾·1918~2012)의 시다. 중국 농민들 사이에 불리던 옛 농요를 다듬은 시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바라는 것과 생각하는 게 다른 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짚는 내용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문 총장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검찰 개혁 방안과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 조직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도 보일 수 있었다. 또 이 시는 지난 2014년 김진태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먼저 읊은 적이 있다. 당시 김 총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 사건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각자 자기들 입장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이 시를 인용했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검찰도 정치적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불신이 생기고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생기게 된 것"이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 기존 검찰 개혁 방안을 "첫째" "둘째" "셋째" 하며 강조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첫째로 정치도 검찰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지만 검찰 스스로 중립 의지를 확실히 가져야 한다"며 "정치에 줄 대기를 통해 혜택을 누려온 일부 정치 검찰의 모습이 있다면 통렬히 반성해야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총장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둘째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인데, 합리적 조정을 위한 토론이 필요하지만 조정 자체는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제3의 논의 기구 구성 등 지혜를 모아달라"며 "셋째로 공수처 문제인데,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가 대상이고 그중에 검찰도 포함되는 것뿐이다. 2002년 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을 때 반부패기구로 출발했던 처음의 도입 취지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미온적인 문 총장에게 우회적으로 경고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 개혁을 두고 문 대통령과 문 총장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문 총장의 생각은 문재인 정권 국정 철학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며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로서의 답변을 보았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문 총장이 시를 읊은 것에 대해서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총장이 '인사청문회를 해보니 여야 의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는 것도 힘든데 각계각층의 사회 요구를 매일 충족시켜야 하는 대통령은 얼마나 힘드시느냐'고 물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웃음을 지어보였다"며 "일각의 해석처럼 문 총장이 한시를 읊어 청와대의 검찰 개혁 방안과 다른 속내를 내비친 것이 아니다. 분위기는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한 속내일까?

추적사건25시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