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거국내각 ‘수용’ VS 야권은 ‘유보’- 속내는 '주도권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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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작성일16-11-01 06:59 조회1,159회 댓글0건본문
새누리-거국내각 ‘수용’ VS 야권은 ‘유보’- 속내는 '주도권 다툼’
‘최순실 사태’에 따른 국정 대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해법으로 ‘거국내각’ 구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정치권의 셈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애초 거국내각 제안은 야권에서 먼저 제기됐지만 현재는 여권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야권이 이를 저지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하지만 야권 내에서도 ‘포스트 박근혜’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거국내각에 준하는 분권형이든 내각제든 새로운 형태의 정부 출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여야가 거국내각 논의에 앞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대비해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각 당에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거국내각 제안은 야권에서 먼저 나온 국정 정상화 해법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해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이 거국내각을 제안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여권 내에서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비박계와 일부 중립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거국내각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비박계 의원 38명은 31일 거국내각 구성과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전날 최고위원회를 통해 거국내각을 전격 수용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대선을 앞두고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청와대와 함께 위기에 내몰린 새누리당 입장에선 거국내각으로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새누리당의 수용으로 급물살을 탈 것 같았던 정치권의 거국내각 논의는 현재 야권의 저지로 일단 멈춘 상태다. 야권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거국내각이란 이슈로 인해 자칫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이 묻힐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국면전환용 거국내각이라는 것이다. 야권이 거국내각 논의에 앞서 특별법에 의한 별도의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수용을 면피용으로 규정하며 “(거국내각은) 진상규명 할 수 있는 특별법에 의한 특별검사를 통해서 납득할만한 조치가 있을 때 논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역시 “거국내각을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거국내각 속도조절에 나선 야권 내부에서도 ‘포스트 박근혜’ 체제를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 경제 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 역시 국정 정상화를 위해 거국내각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100% 공감한다”며 “이를 위해선 청와대와 집권당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야권과는 협의도 없이 거국내각 총리 후보를 언론에 흘리는 등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치권의 거국내각 논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민주당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거국내각의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여야가 합의 추대한 총리가 인사, 행정 등 국정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장은 김용태 의원 등 비박계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기동민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의총 직후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일선 후퇴가 거국내각의 전제조건”이라며 “박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거국중립내각은 말이 안 된다. 대통령 스스로 손을 뗄 때 거국내각이 실체화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탈당을 전제로 거국내각 논의를 위한 여야 3당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선(先) 철저한 수사, 대통령의 탈당, 그리고 후(後) 처리 방안으로 거국내각을 3당과 대통령의 협의 하에 구성해야 한다"며 선결조건들을 내걸었다. 야권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청와대는 거국내각의 취지를 반영한 '책임총리제' 도입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거국내각의 형식 자체를 놓고 이견이 많은 만큼 실질적인 면에서 거국내각의 성격을 띤 책임총리 방식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거국내각’ 실현 가능한가?
정치용어일뿐인 ‘거국내각’, 법적 근거도 전례가 없어
최순실 게이트로 현정부가 최대위기에 몰리면서 정국운영상 우리나라 헌정사에 찾아보기 힘든 거국중립내각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당이 앞장서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야당에도 공감대가 있다. 다만 대통령제의 특성상 엄밀한 의미의 거국내각은 실현이 매우 어렵다. 무엇이 거국내각인지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도 크다. 거국내각은 정치적 용어일 뿐 별다른 법적 근거는 없다. 대통령이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내각을 임명하고 행정부의 책임을 지는 대통령제의 구조와 상충된다.
과거 논의에 비춰보면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여야가 함께 내각을 구성해야 거국내각으로 부를 수 있다는 정도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현재 논의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모든 직무를 거국내각에 맡겨야 한다는 조건도 추가된다. 여야가 거국내각 제안을 놓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은 이런 이유다. 여야가 각자 그리는 차기 내각과 권력구조의 형태는 해석에 따라 거국내각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권 인사를 국무총리로 세우는 방안을 핵심으로 본다.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은 답안지에 없다. 거국내각을 표방하되 실제론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책임총리제 정도다. 국민적 비난여론을 수용하면서 국정은 어느 정도 여권이 끌고갈 수 있는 방안이다. 야당이 제안한 형태의 거국내각은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당발 거국내각을 국면전환용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도 자신이 앞서 제안한 거국내각에 대해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전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하고 여전히 실권을 행사하는 거국내각은 '짝퉁'이란 것이다. 야권에서 거국내각을 줄기차게 요구한 민병두 의원은 "대통령의 직무가 사실상 정지되고 내각과 그 총리가 전권을 갖는 것이 진정한 거국내각일 것"이라며 "야당에 총리 추천을 제안해 거국내각으로 포장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탈당과 여야의 내각 참여란 조건에 꼭 맞는 사례는 국내에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나마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이 꽤 근접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 관권 선거 의혹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여당 대선후보이던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와 갈등도 커졌다. 노 대통령은 민자당 명예총재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이어 정원식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10월 현승종 당시 한림대 총장이 신임 총리가 됐다. 물론 실질적 거국내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밖에 역대 대통령 임기말의 지지도 하락, 정치적 위기가 올 때마다 거국내각 논의가 반복됐다. 김대중 대통령(DJ)이 임기말 아들비리 등으로 리더십이 무너지자 거국내각이 거론됐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 등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말 대연정, 거국내각을 각각 제안하거나 검토했지만 실패했다. 앞서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으로 포함했다. 1960년 4·19 혁명 후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자 허정을 수반으로 한 과도내각이 들어섰다. 둘 다 거국내각으로 보기에는 무리다.
엄대진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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