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전격인하 '1천220조원' 가계부채는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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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병찬 작성일 16-06-09 22:12본문
금리 전격인하 '1천220조원' 가계부채는 어찌하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9일 기준금리를 1.25%로 전격 인하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은행권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하는 등 관리 대책을 펴고 있는데도 가계부채 급증세는 꺾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제2금융권 부채가 늘어나는 '풍선효과'나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 관리에 정부가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자로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올해 3분기 중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호기가 얼마나 길어질지는 의문이다.
다시 커진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금융권 전체의 가계신용(가계대출과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액을 합한 금액) 잔액은 사상 최대치인 1천223조7천억원이다. 3개월 새 20조6천억원 늘었다. 분기별 증가세는 작년보다 둔화됐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2~4분기에 3개 분기 연속으로 30조원대 증가세를 보였었다. 정부가 올해 2월 수도권에서 시작해 5월부터 전국의 은행권 주택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대출 초기부터 원금을 나눠 갚도록 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영향이다.
특히 지난해 월 6조~7조원에 달했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이 올해 1~2월 2조원대로 감소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잠깐이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3월부터 다시 증가 폭이 커져 4월 5조2천억원, 5월 6조7천억원 늘었다.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해서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집단대출 금액이 급증했다. 올해 1분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10조원 가운데 집단대출 증가액(5조2천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2%까지 높아졌다. 그동안에는 집단대출 비중이 절반을 넘은 적이 없었다.
가계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깐깐해진 은행권 대출심사를 넘지 못한 자영업자 등이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리면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2금융권 부채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비춰보면 작년과 비교해 잦아드는 듯 했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금리 인하로 다시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주열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할 것"
가계부채 규모가 늘어난다고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정부가 가계대출과 관련한 여러 규제를 하고 있는데도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시장이 좋았던 작년 말 상황에 후행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을 보면 하반기 중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은도 하반기에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리 인하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에는 비은행권 가계대출 관리가 강화되면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를 내린 만큼 가계부채에 더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은행권에 이어 보험권에서도 대출심사를 강화하기로 한 상황이다. 상호금융권에 대해서는 현재 5%에 불과한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을 확대하고 비주택담보대출 점검도 강화하기로 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은 올해 말까지 45%로, 고정금리 비중은 4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연 소득 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해 대출심사를 더 깐깐하게 한다. DSR은 현재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강화된 지표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 기타 대출금을 합산해 연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을 따지게 된다.
그러나 가계부채 규모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취약계층 부채의 부실, 집단대출 부실 등이 불거지면 잠재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한 전문가는 "가계부채의 전체 규모 증가세는 피크(정점)가 지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규제 바깥에 있는 제2금융권,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문제를 미시적으로 관리하고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날 한국 정부와 진행한 연례협의 결과 발표 자리에서 통화정책 완화를 권고하면서도 동시에 거시건전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IMF는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환영할만한 조처를 하고 있다면서 "가계대출 건전성 기준을 더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된 것도 부담이다. 미국의 5월 '고용지표 쇼크'로 금리 인상 시기가 다소 미뤄졌지만 머지 않은 시기에 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 흐름에 언젠가는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국내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36.8%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가계부채 중에 약 700~800조 정도는 기준금리 인상기에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단순 계산하면 0.25%포인트만 올려도 이자 부담이 연간 2조원까지 늘어난다는 얘기다. 특히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는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하다.
20대 국회도 가계부채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가계부채 태크스포스(TF)는 이날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불러 '가계부채 현황 및 정부 대책'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가 저금리, 주택시장 정상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다소 빠르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전체적 가계부채 규모나 증가 속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안정성·건전성, 주택시장, 서민경제와 실물경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안심전환대출과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나눠 갚는 여신 관행을 정착시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손병두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2금융권과 아파트 집단대출이 늘어나는 현상을 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대책을 강구할 것이며, 미시대책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