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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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병찬 작성일 15-04-22 15:03본문
한미원자력협정 타결
한미원자력협정이 4년 6개월여간의 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오후 4시15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협정에 가서명할 예정이다.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이 42년만에 새옷을 갈아입게 되는 셈이다.
박노벽한미원자력협정개정협상 전담대사와 토마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 비확산차관보가 지난해 1월 7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만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하고 있다.
한미는 지난 2010년 10월부터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벌여왔다. 우리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을 3대 중점 목표로 정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한미는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을 문제를 놓고 막판까지 밀고당기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기존 협정은 당초 유효기간이 지난해 3월이었지만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만료를 1년 앞둔 2013년 4월 유효기간을 내년 3월까지 2년 연장했다.
*한미 새원자력협정 가서명의 의미
<원전연료 안정 공급ㆍ수출 증진 등 "美와 협상서 실리 챙겼다" 평가>
<한국 핵무기 개발 가능성 없고 원자력 세계 5위 위상 감안한 듯>
<우라늄 저농축ㆍ파이로프로세싱 등 핵심 내용 전제조건 달려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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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22일 한미 원자력협정 전면개정 협상 타결을 이렇게 자평했다. 과거 불평등했던 협정 조항들을 개선했고, 현재 원전업계와 학계에서 요구하는 제약들을 풀었으며, 향후 원자력 기술 개발에 따른 협의 과제도 다룰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는 의미다.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은 실리를 챙겼고 원자력 주권 확보 등 명분 면에서도 잃은 게 없다. 과학기술 분야 한미동맹의 쾌거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에 맞춰 한국 원자력 기술의 행동반경이 제약되고, 언제든 미국이 마음을 바꾸면 농축 재처리 길이 막히게 되는 한계도 존재하는 협정이다.
농축ㆍ재처리 정부 목표는 충족
정부는 애초 이번 개정협상의 목표를 세 가지로 설명해왔다.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이었다. 협정 개정으로 원전 수출에 지장이 없어야 하고, 원전용 농축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아 원전 가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감축하기 위한 작업, 연구 등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애초 설정됐던 목표와 비교하면 이번 협정은 대체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원전 가동 과정에서 필요한 핵연료 생산, 가공, 성형, 연소, 폐기물 처리 등 모든 단계를 뜻하는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도 의미 있다. 그동안 한국은 선행 핵주기인 연료용 저농축, 후행 핵주기인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관련해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이번 협정으로 인해 미국의 추가 동의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제약이 풀린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분야의 경우 한미 양국은 이번 협정을 통해 모든 길을 열어뒀다. 현재 한미 공동 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재처리)에서 성과가 있을 경우 이를 활용해 재처리ㆍ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프랑스 등 한미가 합의하는 제3국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위탁 재처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또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송, 처분 등에 대해서도 기술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평화적 핵이용 주권도 확보
특히 원전연료 공급 분야에서 ‘우라늄 20% 미만 저농축’ 추진 경로를 마련한 것은 평가할 대목이다. 우라늄 농축의 경우 핵무기 개발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존 협정에는 당연히 빠졌다. 미국 의회에서도 핵확산 방지 차원에서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는 나라들에 ‘농축ㆍ재처리를 금지한다’는 ‘골드 스탠다드’를 적용해왔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개정 협정문에는 골드 스탠다드가 최종적으로 빠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라늄 저농축, 평화적 이용 기준인 20%에 맞춰 농축 자체가 가능하게 됐다.
‘양국 차관급으로 구성되는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양국이 합의해 추진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리긴 했지만 원자력 이용 세계 5위 국가 위상을 감안해준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할 리가 없다는 걸 미국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합의는 가능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별도 동의 없이 원자력 연구 개발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 것도 주권 확보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연구자들이 건별 혹은 5년 단위로 세부적인 연구계획을 내서 미국 측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이제는 ‘조사후시험’, ‘전해환원’ 등 사용후핵연료 핵심 연구활동은 승인 없이도 가능하게 됐다.
한미동맹 강화의 그늘도 존재
1973년 발효돼 40여년간 한미 불평등조약의 대표로 여겨졌던 원자력협정이 개정되면서 한미동맹 강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미 양국이 상호 윈윈하는 협정 개정을 통해 한미동맹을 더욱 발전시키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과 외교술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서 경제적 실리와 핵 주권 확보라는 명분을 챙기며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묘안을 찾은 것이다.
다만 미국의 마음이 바뀔 경우 모든 협정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현찰보다는 외상을 확보한 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핵심 합의 내용인 우라늄 저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ㆍ재활용을 위한 파이로프로세싱 등이 미국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농축 기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농축 우라늄 활용 근거만 확보했다는 지적도 있다. 다국적 농축시설 도입, 해외 다국적 농축시설 참여 근거 등이 빠진 데 대해 아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미국이 이번 양보를 근거로 다른 외교 현안에서 한국 정부에게 본전을 찾으려 압박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권병찬 기자